
- 한 몸에 요구되는 두 배역의 긴장
- 거울과 카메라가 좁히는 시선
- 백조의 호수를 바꾸어 듣는 선율
줄거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은 2010년 미국에서, 2011년 2월 국내에서 개봉했다. 뉴욕의 발레리나 니나는 「백조의 호수」의 주역을 꿈꾼다. 그러나 백조와 흑조를 함께 표현해야 하는 배역은 정확한 동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예술감독 토마스의 요구와 새 무용수 릴리의 등장이 니나를 흔든다. 나탈리 포트만이 니나를, 뱅상 카셀이 토마스를, 밀라 쿠니스가 릴리를 연기한다.
한 몸에 요구되는 두 배역의 긴장
니나의 목표는 무대의 중심에 서는 일이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과제는 주역 선발보다 복잡하다. 같은 사람이 순수한 백조와 관능적인 흑조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디션에서 토마스는 니나가 백조에는 어울리지만 흑조에는 부족하다고 본다. 연습을 통해 익힌 정확함이 다른 배역에서는 오히려 넘어야 할 경계가 된다. 더 열심히 반복하면 해결될 듯했던 목표가 자기 표현의 문제로 바뀐다.
릴리는 이 갈등을 눈앞에 보이는 차이로 만든다. 니나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며 완성도를 높이려 하고, 릴리의 존재는 그 통제가 전부인지 묻게 한다. 두 사람을 단순히 승자와 패자를 가를 경쟁자로만 보면 니나가 겪는 압박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니나는 다른 무용수를 경계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없는 표현을 의식한다. 영화의 긴장은 자리를 빼앗길 두려움과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겹치는 데서 생긴다. 여기에 어머니 에리카와 함께 사는 집이 또 하나의 기준을 보탠다. 발레리나였던 어머니의 관심은 연습실 밖에서도 니나의 생활을 감싼다. 배역을 향한 노력은 직장 안의 경쟁에 그치지 않고, 집에서 받아 온 기대와도 이어진다.
거울과 카메라가 좁히는 시선
발레 연습실의 거울은 동작을 확인하는 도구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자기 몸을 바라보는 행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만드는 화면이기도 하다. 니나의 몸과 거울에 비친 몸을 함께 보게 되면, 하나의 동작에도 두 개의 시선이 생긴다. 연습하는 사람의 시선과 그 모습을 점검하는 시선이다. 관객 역시 무용수를 편안히 감상하기보다 무엇이 어긋나는지 살피는 위치에 놓인다.
촬영감독 매튜 리바티크가 사용한 핸드헬드 카메라는 이 거리를 더 좁힌다. 무대를 객석에서 바라보는 시점에 머무르지 않고 무용수의 움직임 가까이 들어간다. 연습실과 복도, 무대가 이어지는 제한된 공간은 니나의 생활이 발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흑백을 중심으로 분홍과 초록을 더한 제한적인 색채도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반사된 얼굴과 흔들리는 화면이 겹치면서 공간은 인물의 긴장을 직접 느끼게 하는 장치가 된다. 거울이 많은 방에서 몸을 고치는 습관은 발레의 일상에 속한다. 영화는 그 익숙한 조건을 이용해 자기 모습을 믿을 수 있는지 묻게 한다. 특별히 낯선 장소를 만들지 않고도 평범한 연습 공간을 불안하게 읽히도록 바꾸는 방식이다.
백조의 호수를 바꾸어 듣는 선율
클린트 맨셀의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옮겨 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맨셀은 원래 음악을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방향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촬영 전부터 안무가 벤자민 밀피에와 함께 춤에 필요한 부분의 속도와 길이를 조율했다. 음악이 완성된 화면 뒤에 붙는 장식이 아니라, 연습과 춤을 조직하는 기준으로 먼저 존재했다는 뜻이다.
익숙한 발레 선율은 그 덕분에 두 가지 일을 한다. 무대에서는 무용수가 따라야 할 시간을 만들고, 영화에서는 니나가 벗어나기 어려운 연습의 세계를 이어 준다. 같은 음악의 재료가 다른 형태로 들릴 때 관객은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백조의 호수」가 극중 공연이자 음악의 바탕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이 작품을 발레 공연의 단순한 재현으로 보기보다, 그 선율 안에서 살아가는 한 무용수의 감각을 따라가는 영화로 읽게 하기 때문이다. 연주가 춤의 박자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면 반복되는 연습도 다르게 보인다. 니나는 동작뿐 아니라 이미 정해진 음악의 시간 안에서 자신의 표현을 찾아야 한다. 선율은 그 도전이 이루어지는 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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