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힘을 잃고 낮아진 자리에서 시작하는 여정
- 아버지의 인정을 바라는 두 형제
- 기울어진 세계를 만드는 화면의 선
줄거리
아스가르드의 왕위를 이을 토르는 자신의 힘을 믿고 성급하게 행동한다. 아버지 오딘은 그를 인간 세계로 추방하고 능력과 망치 묠니르를 빼앗는다. 지구에 떨어진 토르는 뉴멕시코에서 천체 현상을 연구하는 제인 일행을 만난다. 한편 아스가르드에서는 동생 로키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진다.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한 2011년작 「토르: 천둥의 신」은 마블 만화의 영웅이 낯선 세계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그린다.
힘을 잃고 낮아진 자리에서 시작하는 여정
토르의 출발점은 능력을 얻기 전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이미 강한 힘과 높은 지위를 지녔던 인물이 그것을 잃으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이 순서는 영웅의 성장을 보는 기준을 바꾼다. 더 강해지는 방법만 찾는 대신, 자신이 누리던 힘을 어떤 태도로 사용했는지 되짚게 하기 때문이다. 추방은 장소의 이동인 동시에 익숙한 권한이 통하지 않는 자리로 옮겨가는 사건이다.
지구에서 만난 제인 일행은 토르를 왕실의 후계자로 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인간 세계의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신의 세계에서 당연했던 위엄과 자신감이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이 웃음을 만든다. 거대한 신화의 인물을 현대의 일상에 놓는 설정은 토르를 멀리서 바라볼 대상에서 곁에서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꾼다.
묠니르를 잃었다는 조건도 서사에 분명한 질문을 남긴다. 무기를 지닌 상태와 영웅으로서의 자격은 같은 것인지 묻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토르가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지에 앞서, 힘이 없을 때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을 대하는 방식에 시간을 배정한다. 이 여정의 변화는 외형적인 능력보다 선택을 바라보게 한다.
아버지의 인정을 바라는 두 형제
크리스 헴스워스의 토르와 톰 히들스턴의 로키는 왕실의 두 아들이지만 같은 위치에 서 있지 않다. 후계자로 주목받는 형과 그 형을 바라보는 동생의 차이가 관계의 긴장을 만든다. 토르는 행동으로 앞서 나가고 로키는 형과 아버지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의식한다. 두 인물을 함께 보면 같은 가족 안에서 자라더라도 인정받고자 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오딘은 이들에게 아버지인 동시에 왕이다. 아버지의 꾸지람은 곧 통치자의 판단이 되고, 아들의 성급한 행동은 가족 내부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의 감정과 왕국의 질서가 한 관계 안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르가 추방되는 사건에는 부모와 자식의 충돌뿐 아니라 힘을 맡길 사람을 고르는 문제도 놓여 있다.
각본에 참여한 돈 페인은 두 형제가 모두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면을 이야기했다. 이 설명을 바탕으로 보면 로키를 단순히 토르의 반대편에 세워 두기보다, 같은 인정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는 인물로 읽을 수 있다. 배우들의 서로 다른 인상과 행동 방식은 형제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한 가족이라는 공통된 바탕을 남긴다.
기울어진 세계를 만드는 화면의 선
영화는 아스가르드의 궁전과 현대 뉴멕시코의 사막을 오가며 규모와 생활의 차이를 보여준다. 신화의 공간에는 왕실의 질서와 거대한 구조물이 있고, 지구에서는 제인의 연구와 사람들의 일상이 이어진다. 토르가 두 세계 사이를 이동할 때 관객은 인물의 설명뿐 아니라 배경의 크기와 쓰임을 통해 그가 놓인 조건이 달라졌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 화면을 기울여 찍는 구도가 반복된다. 수평선이 비스듬하게 놓이면 익숙한 장소도 안정된 풍경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촬영감독 하리스 잠바를루코스는 인물이나 풍경의 불협화음과 조화를 표현하고 만화의 그림 같은 성격을 살리는 데 이 구도가 맞았다고 설명했다. 화면의 선은 대사의 내용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을 더한다.
이 기울기는 신화의 세계를 먼 과거의 풍경처럼 고정하지 않는 효과도 낸다. 고대의 이미지와 현대의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객의 시선 역시 반듯한 기준에서 조금 벗어난다. 토르가 당연하게 여기던 자리가 흔들리고 두 세계의 관계를 새로 보게 되는 여정이 화면의 방향과도 맞물린다.